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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담

2010년 12월 22일에 돌아본 내 인생

#. [ 25년간의 나 ]

0~6 :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가난했던 80년대 시절, 아빠는 다른 나라에 계셔서
             엄마와 형이랑만 지냈고, 아빠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마냥 밝고 쾌활한 애기였다고 한다.

7 ~ 9 :   여기서부터는 하나씩 하나씩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꼬맹이가 국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동네 투어를 거쳐 등교를 한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이 꼬맹이는 절대 30분만에 간 적은 없다;; 게다가 하교길은 1시간도 넘는다.)
             "넌 장래희망이 뭐니?" 라고 물으면 항상 과학자나 파일럿이라고 했었다. 과학자와 파일럿 사이에서
             굉장히 갈등하며 6개월마다 대답을 바꾼거 같다. 하지만 진짜 꿈은 '코미디언'이었다.
             친구들을 웃기는 것이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의 가장 큰 낙이었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반지하에 살던 보릿고개 시절, 두 꼬맹이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속앓이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10~12 :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다.
             12년을 살게 될 노원으로 이사를 와 전학을 하고, (와!! 아파트다. 우리집이 생겼어. 이젠 낮에 전등 안 켜도 돼)
             16년을 함께 할 베스트 프렌드들을 만난다.
             '운동'이란 놈을 만나 미치기 시작한다. 밥만 먹으면 뛰어다닌다. 처음으로 그리고 스스로 꿈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 학교가 서울시 체전에 참가만 했어도 지금의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을지도..

13~15 : 중학교 시절은 오히려 기억이 적다. 그냥 운동도 좋아했던 청소년
             부모님의 만류로 운동을 포기하고(이젠 그 이유를 알겠다.),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운동은 가장 좋아하는 취미자 특기긴 했었다.

16~18 : 누구나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추억이 많을 것이다. 수능이라는 존재감은 20여년 간의 삶 중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었을테고, 그 스트레스는 친구들과 추억을 만드는 것으로 보상받았던 거 같다.
             공부도 많이 했지만, 놀기도 많이 했던 시절.
             첫사랑을 만난다. 이 학생은 어리석게도 이 사람이 아니면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련도 오래갔겠지..?

19~20 : 꿈에 그리던 대학생!! 자유가 이런거구나. 좋긴 좋다.
             하지만 내 인생 그래프의 하락세가 시작된다. 말로만 듣던 '압류 딱지'
             한달에 5만원으로 살았다. 다행이 학교가 가까워서 3,4교시는 공강으로 만들어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
             한 동안은 대인 기피증도 생겼다. 정말 별 생각을 다 해봤던 시절.
             그 때부터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내 자신한테라도 말하면 좀 위로받는 거 같아서..
             그래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철없는 나에겐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군대나 가자

21~23 : 공군 632기로 입대. 내 인생 그래프의 가장 큰 하락세.

             군 생활 중에 가장 큰 기억은,

             "따르릉" 첫 휴가를 이틀 앞두고, 선임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 중에 부대로 날 찾는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 걸려온 전화.
             우리집이 결국엔 넘어갔다. 다시 반지하 생활이다. 이사를 했으니 주소를 가르쳐주신다.
             눈물을 훔치신다. 티 안나게 하시려 했겠지만.. 뭐야.. 다 티난다..
             다시 농구를 하러 간다. 아무리 이등병이라지만.... 망할.. 나 이 상태로 농구 다시 해야해??

             가장 외로웠던 시절은 군 생활이었다. 이 때 집안의 불화가 왔고, 어머니의 눈물을 가장 많이 봤다.
             그 눈물의 의미는 자식들에게 그저 미안함 뿐이었다. 그 자식은 더 미칠 꺼 같다.
             하필 이럴 때 왜 군대는 와가지고..            

23~24 : 제대 후, 휴학 -> 알바 -> 복학 테크를 탔다.
             영화관에서 알바를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많이 사랑하기도 하고, 많이 다투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사랑을 한다.
             첫 사랑 때 느낀 어리석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깨진다.
             
             이 때 나는 가장 바빴던 시절이었다.
             사랑도 가장 많이 했고, 공부도 가장 많이 했고, 알바도 했고.. 2-2학기 부터 3학년 동안은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거의 없다.
             사랑도 포기할 수 없었고, 부모님을 위해. 집을 위해. 성공하기 위해. 공부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긴 했지만 내 한계를 초과했던 거 같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두 마리 다 놓친 거 같다.
             누군가에게 많은 상처도 줬고, 또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다.

             그래도 난, 이 때가 가장 최고의 기억이고 가장 뜨거운 시절이었다.
             '내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멍청하고 순수하게 노력한 것 같다.
             또, 내 스스로도 많이 성숙해졌고 철도 많이 들었다.

             이 때의 나는 많이 울기도, 화내기도, 짜증내기도, 힘들기도, 머리가 터질 것 같기도 했지만
             암튼 그냥 좋다. 그냥 좋은 느낌이야

25~    : 4학년, 대학 생활 햇수로 7년.., 사회에 대한 두려움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난 2년은 공부 때문에 지긋지긋했다.
            다시 학생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애. 그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지난 3개월은 취업 전쟁을 치뤘다. 2년의 공부도 힘들었지만, 이건 더 힘들다.
            뭐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하루가 멀다하게 쓰는 자소서도 미칠 노릇이다.
            서류 탈락, 인적성 탈락, 탈락, 탈락.. 이 느낌은 겪은 사람만 알겠지..

            수능처럼 대기자 번호도 없는 이 전쟁터에서는
            어떻게든 한 개만 합격하면 승리자다.

            전쟁을 치루고....
            어쨌든 나는 한 달 후에 연수를 떠난다. 

            25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이젠 더 삭막한 사회 생활에서 나를 돌아볼 여유도 더 줄어들겠지??

            한 달 동안은 정말 즐거운 일들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연수 가기 전에 듣고 싶은 소식도 있고, 
            .
            .
            .
            아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네.. 나중에 이거 보면 나도 많이 웃을꺼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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